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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들임, 날개를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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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들임 13] 우리들의 잔치, ‘천연염색 빛깔 모음전(5.16~5.21)’을 열다.

5월부터 이른 무더위가 온다더니 한낮은 벌써부터 슬그머니 더운 기운이 맴돈다. 전시회를 앞두고 최종점검을 해야 하는 때, 그동안 한 장씩 미완(未完 )인 채 이어놓은 모자 꾸러미를 펼쳐보니 마음에 차오르는 흡족함이 없다.

www.jadam.kr 2007-05-23 [ 한지숙 ]
미완성인 모자들을 두고 새 디자인을 또 매만졌다. 첫날 시집 간 '감물4색 챙모자'

염색 공부를 좀더 깊이있게 하겠노라 부산으로 건너다닌 지 1년을 넘었다. 여러 바쁜 중에 매달 2회씩 온종일 짬을 내야 하는 것과 오가는 형편의 여유 없음이 불 보듯 빤한데도 그동안 길들여진 연습에 이론까지 다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아쉬워 선택한 길. 부산 신라대학교 전통염색아카데미의 전문가 과정인 ‘회인(물들이는 사람들)’ 3기인 내가 그 절반의 과정을 지나왔고 4기, 5기의 수업이 진행중이다.

www.jadam.kr 2007-05-23 [ 한지숙 ]
우리들의 소박한 잔치, '천연염색 빛깔 모음전'.

무엇을 공부했고 배운 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동료들끼리의 호기심은 물론이고 그동안 갈고 닦은 솜씨를 마음껏 펼쳐보이는 자리, ‘천연염색 빛깔 모음전(5.16~5.21)’의 멍석을 펴는 것으로 우리들의 소박한 잔치는 시작되었다.

www.jadam.kr 2007-05-23 [ 한지숙 ]
서울, 제주, 창원 등 전국에서 모여든 회원들의 작품.

며칠 맑고 상쾌한 날이 이어졌는데, 하필 전시회 첫날인 수요일(5.16)은 아침부터 거친 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작품들을 걸기 위해 동료들은 전날 밤 늦은 시각까지 전시회장에서 분주한 손길을 나누었고, 몇 가지 꼭 마무리하고 싶었던 것들에 종종거린 나는 당일 점심 시간을 넘기고야 출발했다.

www.jadam.kr 2007-05-23 [ 한지숙 ]
다양한 염료로 물들여 바구니에 소복하게 담은 '누에고치'.

“어디쯤 오니...?” 동갑내기 김선생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연신 웅웅거리고, 낯선 길목의 갤러리까지 더듬거리며 찾아가기엔 너무 촉박한 시간, 끝내 택시 한 대를 앞세우고야 허둥지둥 갤러리로 들어가니 10분 지각이다. 깔끔한 양복 차림의 신라대학교 총장님(정홍섭)과 조경래교수님께 인사를 드리고 동료들의 손을 마주잡았다.

www.jadam.kr 2007-05-23 [ 한지숙 ]
스카프에 무늬를 담고, 자연의 빛으로 식탁을 꾸미고, 밋밋한 벽을 수놓은 조각보.

갤러리 곳곳에 걸린 작품만큼이나 화사하고 우아한 모습의 동료들. 그들이 물들이고 손질하여 특별한 오늘을 위해 마련했을 화사한 옷차림이 한눈에 들어왔고, 옷매무새만큼이나 단아하고 우아한 미소가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입가에 번져났다. 평소 수업 시간에 보던 모습과 사뭇 다른, 뿌듯함과 충만함이 그득하여 우러나올 수 있는 미소... 빗물범벅, 땀범벅으로 번들거렸을 내 모습은 다독거릴 짬도 없이 그들의 환한 웃음에 묻혀 나 또한 그동안의 잡다한 시끌거림을 모두 잊은 채 오랜만에 환하고 환한 웃음을 짓는다.

www.jadam.kr 2007-05-23 [ 한지숙 ]
정다운 벗과 차 한 잔 나누며 옛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은 사랑방 꾸밈.

염색을 배우다 보면 물들인 원단이 쌓이게 되고 그것을 이용해 보고 싶어 규방공예 등의 바느질에 관심을 갖게 된다. 퀼트나 홈패션 등은 즐겨도 염색에 대해 전혀 모른 채 바느질에 익숙한 사람은 또 다양한 원단에 대한 욕심으로 염색에 눈을 돌리기도 한다. 요즘 천연염색에 관한 관심이 다시 높아져 인터넷상의 여러 카페나 블로그 등에서 그들이 즐기는 여러 소품과 다양한 빛깔들을 자주 만날 수 있음도 기쁜 일이다.

www.jadam.kr 2007-05-23 [ 한지숙 ]
감물, 쪽물을 들여 그림을 그려넣은 방석. 기대기도 앉기도 미안할 정도로 곱다.

물을 들이고 그것들을 이용한 의류와 소품을 만들어 선보이는 전시회는 자주 둘러보려고 노력한다. 쪽과 감물, 오배자, 홍화, 괴화, 황련, 치자, 소목 등등 염색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손에 담갔을 염료들의 ‘빛 잔치’. 그 다양한 염료들을 어떻게 이용하고 좀더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을 시키느냐, 작가만의 개성을 얼마나 살려냈느냐가 궁금해 자주 찾는지도 모른다.

www.jadam.kr 2007-05-23 [ 한지숙 ]
아이디어가 돋보여 눈길을 한껏 사로잡은 가방과 다이어리 등 소품.

이번 우리의 전시회도 여느 천연염색 전시회의 그것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으나 첫날부터 마무리까지 부족함 없이 덜고 남음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된, 회원 하나하나 각자의 자리에서 정성을 다했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의류나 소품에 자신 없는 회원은 스카프 수십 장을 매만져 그 몇 배의 가치를 드러냈고, 오랜 시간 반짇고리와 함께한 회원은 실과 바늘로 이어진 한땀한땀의 고된 세월을 선보였으며, 만들기는 자신 없어도 물들이는 일에만 몰두해 온 회원은 한 가지 염료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온갖 빛깔과 무늬를 자랑하기도 했다.

www.jadam.kr 2007-05-23 [ 한지숙 ]
멋과 실용성을 겸한 한복과 현대의류, 모자들도 선보였다.

다른 전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참신한 아이디어의 작품들이 특히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작가만의 개성이 반짝이는, 소박하고 간단하지만 한눈에 참신하게 느껴지는 창작 아이디어가 그것인데, 나 스스로 지닌 역량이 부족하여 그런 것들에 짧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고 고민해 온 부분이라 더욱 깊은 관심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멀리서 가까이에서 귀한 걸음과 더불어 전시회를 빛내주신 손님들께 뜨거운 가슴으로 고마운 인사를 드리며, 이번 전시에 참여한 회인의 동료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www.jadam.kr 2007-05-23 [ 한지숙 ]
'쪽/홍화/치자'의 3색 '꽃빨래'. 나만 가슴 뭉쿨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수북했던 바구니가 텅텅 비었으니.

이번 ‘천연염색 빛깔 모음전’의 또 하나 이벤트를 기억하고 싶다.

여자 아기로 태어나 여자 아이, 여학생, ‘여자’로 살아갈 출발점에 서성이게 될 첫 만남, 초경(初經). 그 첫 만남의 두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자연의 빛깔로 물들인 꽃빨래가 있으니, 이 땅에 뿌리 내리며 살아갈 ‘여성’으로 성장하는 이 세상 모든 딸아이들에게 보내는 엄마의 사랑이 담긴 엽서、‘초경을 맞는 나의 딸에게 꽃빨래를...’ 띄운다.

태어날 때의 아이를 만나는 설레임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설레임은 어디로 가고 내 젖이 부족해서 모유를 못 먹인 것이, 내가 바빠서, 귀찮아서 천 기저귀를 채워주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고작 2년이었건만 그걸 못해 주었네요. 이제 초경을 맞는 딸아이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사랑이 있습니다. 딸아이의 여성 인생 40년 동안을 다 해주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10년간은 해줄 수 있는 사랑이 있습니다. 나의 딸에게 꽃빨래를...

기사입력시간 : 2007-05-23 12:2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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