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바라나시를 떠나며오늘 밤 네팔로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고 나오는 골목길.
분비물과 쓰레기 모습과 내음새에 익숙해져 버렸음을 알았다.
냄새가 낯설지가 않았다.
그런대로 어두운 골목길에도 잘 피해다닐 수 있었다.
익숙함의 적은 없나보다.
인류의 문명이 갠지스강에서 출발했듯이 생태문명 또한 이곳에서 출발할 지도 모른다.
산업문명의 지배아래 삶과 죽음마저 저당잡히어 제단 당하는 질식할 듯한
육신과 영혼의 씻기움과 정열은 마크 트윈의 말했듯이
'전설보다 역사보다 오래된...'것이 갠지스강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갠지스 강가를 휘돌아 다니면 인간의 희노애락의 역사와 지금-여기의 생사를
목격할 수 있다.
강물의 고요한 흐름에 맞춘 피리의 음율은 그의 연주를 들으라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뒤에 빽빽 불어대며 피리를 파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물결의 음율을 보여준 피리부는 그 사나이게게
"고맙습니다." 합장하며 떠나는 나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지 않는다.
2. 가난한 자들의 화장터어제에 이어 가난한 자들의 화장터를 찾았다.
유가족들이 애도 속에서 가트를 가득메운 연기나 장단소리,
나의 진입을 누구 하나 말리지 않는다.
이제 막 하나의 주검이 불길 속에 보여진다.
살은 불길에 녹아내려 재가 되었고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나무만이 남아 있다.
살지짐이 계속되는 주검은 머리 형태가 사라지고 갈비뼈가 드러난다.
시커먼 두개골이 드러나자 가족이 대나무를 들고 와서 세게 3번, 머리를 친다.
머리는 두개골로 나뉘어진다.
이제 최초의 가릿대로 돌아간다.
다 태워진 재에 물을 부어 열을 식힌뒤 두개골을 찾아낸다.
시커먼 두개골은 산자의 손에서 나뭇잎 받침대에 들려 강물에 버려진다.
두개골은 물살에 어디론가로 실려간다.
재 속에서 뼈들이 추려진다.
손가락보다 작은 뼈들,
한몸을 지탱했던 뼈들이 모두 분리되어 재 속에 남겨진 조각들
또한 겐지스강물에 놓아버린다.
이렇게 생의 인연은 불을 매개로 육신은 사라지고 그 잔해는
생명의 세례를 받았던 물의 인연으로 옮겨진다.
인간의 몸이 지수화풍이 각각 8분의 1이고 나머지 2분의 1인
아카샤(에테르)로 이루어졌다고 하던가.
한편으로는 화장의 풍습도 지역에 따라 매장(지),수장(수),
화장(화), 풍장(풍)으로 나뉘어진다.
또 다른 죽음의 곡성이 저 골목길로부터 들려 나온다.
우렁찬 젊은이들의 상여소리(마치 데모가처럼 들린다)에 등장된 주검은
주황색천으로만 덮여져 있다.
어떠한 금색의 화려한 무늬도 테두리도 없다.
그 주검은 강가에 놓여진다.
태어난 어린 생명은 신의 보호를 받기 위한 정갈한 영혼의 약속
성수의 세례를 받아 세속을 살아가고 매년 성소 바라나시에서
속됨을 씻어내는 전례는 삶의 연에서 주검의 연으로 이동한다.
살아 있는 인간의 고통을 벗어나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생태 생멸의 제의식이 겐지스강에서 이루어진다.
저 불속에서 있는 주검은 살아 어떠한 괴로움의 종적을 가졌을까?
이렇듯 물고기의 놀이 도구, 강가의 영양분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4. 겐지스 강은 어느 강보다 깨끗하다.겐지스 강에 던져진 뼈들은 생태적 작용에 한몫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오고 있다.
하루에 2-3백명이 뼈들이 겐지스강에 버려지니.. ...
마시고 목욕을 하고 옷과 식기를 씻고 주검이 묻히고 먹거리를
이 강물은 세계 어느 강물보다 자정 능력이 뛰어난 물일 것이다.
하지만 한계치도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많은 잔해들이 강바닥으로 던져지고 있으니.
메인 가트에서 상류로 내려가면 상큼한 강내음이 코속으로 들어온다.
자연의 생과 사의 흐름이 이곳에서 이루어지는데
누가 겐지스 강물을 더럽다고 하는가?
겐지스 강가 사방 6KM 이내에는 화학공장이 없어
화학성 독성 폐수가 이곳으로 유입되지 않는다고 한다.
가트 주위의 소분비물이 가득한 곳을 걸은 지 며칠째,
이제는 사람의 분비물과의 차이를 냄새로 구별한다.
잡식의 사람의 분비물은 처음에는 구역질나는 악취가 강하다.
이에 반해 풀을 먹는 소와 염소의 분비물들은
천연비료 섞인 흙내음이다.
진정 더러운 것은 인간의 분비물보다 인간의 탐욕이다.
인간의 탐욕이 생태계 오염과 파괴의 근원이듯이.
5. 손으로 먹는 것, 손으로 뒷처리 하는 것은...겐지스강의 생태법칙이 거스름없이 적용되듯이
인도인들이 손으로 음식을 먹고 뒷처리하는 것은
아직은 자본주의 거대 기업의 횡포, 산업문명 속에서도 살아
남아 있는 그들만의 관습이다.
인간은 음식물을 모두 손으로 직접 하고,손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또한 뒷처리도 손으로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푸라기를 이용하여 한 뒤 물로 했던 것처럼...
이제 교양있고 품위있는 자들은 손으로 하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포크와 스푼을 사용해야 한다.
살만한 20퍼센트의 인도인들은 때로는 포크와 스푼을 이용한다.
젓가락이나 포크 등 손이 아닌 도구는 공장에서 만들어 질 것이다.
이 공장은 유통구조를 만들어 낼 것이다.
식사준비 서비스에 도구사용료와 유지비(노동력)가 포함될 것이다.
뒷처리 시 화장지는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그것으로 인해 더많은 벌목이 이루어질 것이며
화장지 처리를 위한 쓰레기통이 필요하고 인부가 필요할 것이다.
이들의 관습에서 벗어나는 순간 일상 필수품을 사기 위해 돈이
더 필요할 것이며 자본주의 상품 순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들이 '더럽고 가난하다'라는 말은 서구인들이
그리고 기타 자본가들이 만들어낸 것이며
그들에게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종속적 생활을 강요하는 폭력이다.
더러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은 채 부패되고 썩어가고 있는
우리의 끊임없는 탐욕이다.
그들은 모든 인간과 동물의 분비물에 조차 일상적 삶에 이용하는 지혜,
찌꺼기(쓰레기)가 유용한 생활들,
그것은 우리내 역사에서도 있었던 일반 민중들의 삶이다.
가난하다고 누가 말했던가?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고 가난한 삶에 체화되었지만 그것을 증폭시키는
20퍼센트의 인도 상류계급,권력자들이 부익부 빈익빈을 가중화시킨다.
그래서 이곳의 생태문명의 일형태를 유지하고 계발하여도
이 사회구조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그리하여 생태적 삶의 자연스런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가난에 순응할 수밖에 없음을 안다.
7. 인도 정신을 배운다고 정신적 평화, 고향이라고 서양인이나 설익은 한국사람은
이곳을 즐기고 있는 지는 몰라도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진정 너희는 인도인의 그 자본화된 삶 속에서 더욱 절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식민의 역사를, 죽어가는 민중들의 생태적 삶을 보고 있는가?
평화로움, 샨티샨티는 바로 우리내의 처절한 삶의 현장 속에서 간절히 기원된다.
일상을 떠나서 해인을 구할 수 없고, 우주와 인간, 생명의 생멸을 바로볼 수 없으리라.
갠지스강의 전례들, 그것은 인도인의 사상, 생태적 삶의 소중한 의식이다.
이제 그 전례, 그 의식, 그 일상도 사라지고 관광용 박물관으로 남아가고 있다.
바라나시를 떠나면서.....2002.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