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詩에 이르기를 ‘산승은 세월을 헤아릴 줄 모르나(山僧不解數甲子)/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걸 보고 천하가 가을됨을 안다(一葉落知天下秋)’고 했다. 만해는 《십현담주해》에서 조사(祖師)의 뜻을 ‘나뭇잎 하나로 천하가 가을됨을 안다(一葉天下秋)’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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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쫓기듯 살아가는 세속의 시간에서 멀어져 온전히 나라는 존재에 충만한 순간을 가지려고 새벽산을 오르곤 한다. 기껏 올라 보아야 다시 내려오는 길이 고작이지만, 제 몸 속의 실로 나뭇가지 사이를 오가며 집을 짓는 거미처럼,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내 삶과 존재의 집을 지어서는 홀로 드나들어 본다. 이즈음 여름산은 푸른 잎들이 찾아들어 산그늘까지 초록으로 염색해 두었다. 산의 초입에서부터 출렁이는 초록의 광휘를 손바닥으로, 눈으로, 가슴으로 받아들고 산을 오르다보면 어느새 세파에 휘둘리던 마음이라는 것도 태어난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하는 한그루 나무의 삶을 닮아간다. 한 그루 나무 곁에 서서 나는 가만히 내 안의 나이테를 바라보며 엽록의 시간을 되새김질 해 보는 것이다. 이 충만한 엽록의 시간 끝에 만해선사(萬海禪師)는 내게 말을 걸곤 한다.
지금부터 꼭 80년 전이겠다. 을축년(1925년) 유월, 오세암의 녹음을 마음으로 다스렸을 만해선사의 심경은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에 알뜰히 새겨져 있다. 시집 《님의 침묵》이 대중을 향한 만해선사의 외침이었다면 《십현담주해》야 말로 선승으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내적 성찰의 고백서라 할 수 있다. 만해선사는 이 저술행위를 통해 세상을 버리지 않으면서 세상과 함께 가는 대승의 길을 육화해 낸다. 선사에게 구한말 존폐의 위기에 처한 조선불교를 구하고자 했던 불교근대화운동이나 일제에 강점당한 민족의 운명을 구하고자 했던 3·1운동은 세상을 구하려는 열정의 분출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대사회적 실천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던 선사가 내설악에서 보낸 을축년 여름 한철은 분명 정신적 충일을 위한 내적 몰입의 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근대충격에 좌충우돌하던 구한말 우리 민족의 역사는 고스란히 만해 자신의 생애사라 할 수 있다. 십대 후반부터 세상과 온몸으로 부딪히며 걸어와야 했던 선사의 삶을 생각해 보라. 의병참가, 북대륙 여행과 방랑체험, 출가와 재출가, 선수행과 일본체험, 잡지발행과 문필활동, 3·1운동과 감옥체험 등으로 이어진 만해선사의 청년기는 격정의 분출 그 자체였다. 이십대에서 사십대 중반에 이르는 이 시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당당하게 맞서며 앞을 향해 내달린 숨 막히는 질주의 시간이라 하겠다. 그런 선사가 처음 출가를 결행한 백담사로 돌아와 초발심으로 되돌아간 순간에 을축년 여름의 녹음은 빛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만해선사의 정신이 끝내 싱그럽게 살아있을 수 있었던 까닭은 세속의 더러움 속을 헤매다가 문득 자신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는 이 유폐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리라.
선사에게 불교(佛敎)와 선(禪)은 ‘타고 남은 재를 기름으로 만드는’(시 <알 수 없어요>) 정신의 질적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촉매제라 할 수 있다. 결국 만해선사가 내설악 푸른 산빛 속에서 본 것은 비 개인 숲에서 진동하는 정신의 깨어있는 생기 같은 것이었으리라. 이 향기가 없었다면 선사 또한 동시대의 다른 선각자와 같이 현실적인 명리를 좇아 세속의 오탁악세에 발을 디밀고 말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만해선사의 정신이 형형하게 빛날 수 있었던 까닭은 스스로 산중에 자신을 유폐시키고 시비와 유무, 선악과 생사를 마음으로 넘고 또 넘는 정신의 고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시집 《님의 침묵》 또한 이처럼 정신의 생기를 비축하는 벼림의 시간이 있었기에 도달할 수 있는 한 경지는 아니었을까.
만해는 《십현담주해》의 서문에서 이 책을 주해한 매월당 김시습의 삶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저, 매월에게는 지키고자 한 것이 있었으나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운림(雲林)에 낙척(拓)한 몸이 되어, 때로는 원숭이와 같이 때로는 학과 같이 행세하였다. 끝내 당시 세상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천하만세(天下萬世)에 결백하였으니 그 뜻은 괴로운 것이었고 그 정(情)은 슬픈 것이었다.’ 매월당의 괴롭고 슬픈 심사는 선사의 것이었고 천하만세의 결백 또한 그의 것이었다. 이처럼 만해선사는 매월당을 거울삼아 마음의 띠끌을 씻어내는 자기집중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처음으로 불가(佛家)에 들어 정신의 엽록소를 만들어나가던 그 자리, 내설악 백담계곡을 오르내리며 선사는 세속에 물든 정신을 순일무잡하게 만들어 나갈 줄 알았다. 위당 정인보가 만해의 정신에서 느꼈던 ‘풍란화 매운 향내’는 바로 이러한 내적 비상의 시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를 지칭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만해정신의 빛나는 국면에 대한 수많은 평가가 있어 왔다. 그러나 3·1운동을 주도하며 민족의 지도자로서 위상을 확보해 나가던 그가, 어느 날 표표히 내설악에 들어 존재와 삶의 밀의를 체득하고자 홀로 내설악을 오르내린 을축년의 푸른 여름이야말로 그의 정신이 끝내 초록의 광휘를 발할 수 있었던 원천이 아닌가 한다.
唐詩에 이르기를 ‘산승은 세월을 헤아릴 줄 모르나(山僧不解數甲子)/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걸 보고 천하가 가을됨을 안다(一葉落知天下秋)’고 했다. 만해는 《십현담주해》에서 조사(祖師)의 뜻을 ‘나뭇잎 하나로 천하가 가을됨을 안다(一葉天下秋)’에 비유하며 세속의 시간에 잠시 문을 걸고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에서 천하의 기운을 읽어내고자 하였다. 삶의 이해할 수 없는 본질을 직관으로 포착해내는 시인의 눈은 이 나뭇잎 하나를 바라보는 데에서 탄생한다. 문밖에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안다는 옛 군자의 깊이는 내면의 깊은 세계로 침잠해 들어가는 자기집중의 순간, 그 선(禪)의 시간이 가져다준 아름다운 충만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만해선사의 정신이 마르지 않고 굽이치는 근원적인 힘은 홀로 나뭇잎 하나를 응시하며 천하를 예감하는 자기집중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새벽산을 오르다 유독 먼저 단풍든 나뭇잎 한 장에 눈길이 머문다. 여름 속의 가을이구나, 하고 홀로 뇌까리며 떨어진 나뭇잎을 주워서는 매만져 본다. 이 순간 나는 이 나뭇잎 이 계절의 순리를 배우고 익혀서 안다고는 말할 수 없어진다. 한 잎의 나뭇잎은 저절로 알아서 나고 저절로 알아서 진다. 그러나 저절로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꽃이었다가 꽃을 버릴 줄 알고 잎이었다가 잎을 버릴 줄 아는 있음과 없음의 절묘한 긴장을 유지할 줄 알아야 한다. 떨어지는 나뭇잎 한 장에서 천하의 가을을 직감하는 능력, 그 생의 기미를 포착하는 능력은 스스로 깨치는 정신의 절대긴장 속에서 분출하는 아름다운 예감이기 때문이리라 분주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삼 만해선사는 고요히 폭발하는 자기집중의 시간을 산 자(者)로 기억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만해선사는 나뭇잎 하나로 천하가 가을됨을 아는 순간까지 마음의 산을 오르고 또 오른 자이다. 선사는 떨어지는 하나의 나뭇잎에서 천하의 가을을 읽어내는 순간까지 한마음으로 은산철벽을 뚫은 자이다.
기사입력시간 : 2005-07-13 1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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