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 친구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부친이 얼마 전 병원에서 직장암 판정을 받았는데, 알아보니 비단풀이라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데 그곳에서 구해줄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비단풀이라는 이름은, 최진규씨의 「내 발로 떠나는 방방곡곡 약초산행」이란 책에서 읽고 들어온 터인지만, 이곳에서 집단으로 군락을 이룬 곳을 보지 못했던 터라 알아보겠다고는 했지만 내 자신도 내심 반신반의했다.
화개장터에 관광객을 대상으로 사철 약초를 파는 약초상이 여럿 있어 그곳에 가서 비단풀 말린 게 있냐고 물었다. 대뜸 건너오는 대답이 그게 뭐냐는 거다. 딱히 뭐라 설명하기도 어려워 우물쭈물 하는 사이 처음 들어보는 거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렇게 몇 군데를 알아보는 중에 한 곳에서 자신에게 약초를 공급해주는 사람에게 알아보겠다고 하여 연락처를 남겨주고는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다행히 친구는 인터넷을 통해 강원도에서 비단풀을 구했다고 전화가 왔다.
| ⓒ www.jadam.kr 2006-09-20 [ 유걸 ] 애기땅빈대는 귀화식물로 잎중앙에 점이 있고 털이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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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동 ‘자연을닮은사람들’ 사무실 뒤편에서 이런저런 야생화를 사진에 담다가 풀밭에서 비단풀이 무리지어 자라는 것을 발견하고 적이 놀랐다. 그곳은 예초기로 풀을 벤지 얼마 안 된 땅으로, 이전에는 비단풀을 전혀 보질 못했던 곳인데, 예초기로 다른 풀이 제거된 틈을 타서 한 여름철 급속히 세력을 키운 모양이다.
최진규씨가 모든 암을 귀신같이 고칠 수 있다는 신비로운 약초를 찾아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남미에서 어렵게 구해온 비단풀을, 자신의 사무실 마당에서 발견하고 탄식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비단풀은 대극과의 한해살이풀인 땅빈대 종류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땅빈대는 쇠비름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그것보다는 훨씬 작고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땅바닥에 바짝 붙어 자란다.
가지는 보통 2개씩 갈라지며 붉은색이 돈다. 잎은 마주나며 수평으로 퍼져서 2줄로 배열되고, 가지나 잎을 자르면 흰 젖 같은 즙액이 나온다.
땅빈대 외에도 큰땅빈대, 애기땅빈대가 있다.
땅빈대가 땅에 붙어 자라는데 비해 큰땅빈대는 원줄기가 비스듬히 서고, 땅빈대와 큰땅빈대 는 잎에 점이 없고 가지에 털이 없거나 적은 반면 애기땅빈대는 잎에 자주색 반점이 있고 털이 많은 편이다.
꽃은 8∼9월에 피며 자잘한 꽃 이삭이 잎겨드랑이 혹은 가지 끝에서 나온다.
예전에는 쇠비름만큼이나 밭이랑이며 마당가, 길섶 등에 흔했던 풀이라는데, 여기저기 제초제가 뿌려지고 포장이 되면서 요즘에는 그렇게 흔하지가 않다. 도심 한가운데서도 더러 갈라진 시멘트바닥이나 보도블록 틈을 비집고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베이거나 긁힌 상처에 비단풀을 생즙을 내어 바르면 신기하다 싶을 만큼 곪지 않고 잘 낫는다고 한다. 과일을 깎다 손가락을 깊게 베여 피가 많이 나길래 실험삼아 비단풀을 짓찧어 붙였더니 처음에는 따갑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피가 멎었다.
비단풀은 사마귀를 떼는 데에도 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중남미 사람들은 피부에 사마귀가 생기면 이 풀을 짓찧어 붙이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마귀가 떨어진다고 한다.
최진규씨에 따르면 비단풀은 항암작용이 가장 뛰어난 식물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특히 뇌종양, 골수암, 위암 등에 효과가 크고, 암세포만을 골라서 죽이거나 억제하고 암으로 인한 여러 가지 증상을 없애며, 새살이 빨리 돋아나게 하고 기력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늘에서 말린 비단풀을 하루 20-30그램씩 물로 달여서 먹거나 가루 내어 먹는다.
「약초의 성분과 이용」에서는 비단풀에 대해,
‘동의치료에서 청열, 이습, 피멎이약으로 장염, 이질, 피똥, 피오줌, 하혈, 베인상처 등에 쓴다. 또한 젖이 적을 때에도 달여 먹으며, 뱀에 물린 데와 부스럼에 짓찧어 붙이거나 씻는다. 10~30g 때로는 60g까지 물에 달여 먹는다’ 고 적고 있다.
더위가 한풀 꺾이던 8월말, 극성스런 풀모기에 물려가며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사무실 뒤편의 비단풀을 채취했다.
땅을 기는 데다 식물체가 워낙 작아 양이 많지 않았다. 천혜녹즙을 담글 요량으로 쇠비름을 더해 그늘에서 물기를 말린 뒤에 흑설탕에 저려 유리항아리에 담아놓았는데, 보름이 지나도 우러나온 즙액이 적어 건더기를 건져내고 거기에 소주를 부었다. 그런대로 향이 좋다.
어느 정도 숙성을 거치면 몸에 좋은 약주로 거듭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