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버섯의 신비(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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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갈색그물버섯. Boletus bicolor var. bicolor Peck 영어속명 Red and Yellow Bolete 또는 Two-colored Bolete. 이름 그대로 갓은 빨갛고 포자 나오는 관공부분은 노란색이다. 상처내면 서서히 청변한다. 식용버섯이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위장장애가 있고 아주 비슷하게 생긴 것 가운데 상처내면 즉시 청변하는 독성을 가진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작년 2007년과 금년 2008년 여름에 좀 채취하여 밀가루를 씌워 전을 부쳐 먹었는데 맛이 괜찮고 아무 탈도 없었다.)
최근 본인이 사는 지역에 거대한 헌책방이 두 군데나 문을 열었다. 아주 싼 값에 책을 판다는 대대적인 전면 광고가 매주일 집에 배달된다. 하루는 어슬렁어슬렁 버섯을 사냥하는(mushroom hunting) 마음으로 그 책방에 가서 책이나 뒤져볼까 하여 잠시 들렀다. 제일 먼저 찾은 책 선반은 물론 자연에 관한 책들이 꽂힌 선반이다. 혹시 소장하고 있지 않은 버섯 책이라도 있을까 과연 버섯 책이 서너 가지 꽂혀 있었다. 허지만 모두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뿐이다. 북미주 버섯에 관한 좋은 책(Mushrooms of North America)이 10여 권이나 주욱 꽂혀 있는데 모두 새 책이고 이 사람이 소장한 것은 염가 보급판인 종이 표지(paperback)였으나 이 책들은 모두 두꺼운 표지(hardcover)로 된 것이었다. 가격을 보니 $ 15.95. “야, 이거 엄청 싸네!” 나는 종이표지로 된 것도 $ 29.95에 포장 송료까지 합산하여 거의 35불 이상을 지출하였다. 그 책을 가지고 있는데도 욕심이 난다. 그런데 마침 뒤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버섯을 식별할 수 있게 하는 작은 버섯 책자(David Arora, All That the Rain Promises, and More)가 눈에 띄기에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한 권 뽑아 들었다. 이 책은 미국 서부지방의 버섯을 안내하는 책이라, 마침 캘리포니아에 사는 분에게 보내주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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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단쓴맛그물버섯[이지열]. Tylopilus alboater. 영어속명 Black Velvet Bolete. 갓은 암회갈색에서 흑색이며 노균은 색이 엷어진다. 처음에는 검은 융단 같고 나중에 갓이 갈라진다. 자르거나 상처내면 회적색에서 흑색으로 변한다. 맛은 온화하고[왜 한국명에 쓴맛이라는 말이 들어갔을까?] 식용버섯이다. 색깔이 검기 때문에 시식해 볼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 다음 찾은 선반은 미국 문학 책들이 있는 곳이다. 거의 40년 동안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유일한 단권시집 “풀잎”(Leaves of Grass)을 수집해 오고 있는 터라 혹시나 희귀본이 있나 싶어서다. 희귀본은 없어도 내게 없는 것들이 있기에 두 권을 뽑아 들고 나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를 찾았다. 이 소설 가운데 버섯에 관한 언급이 세 곳이나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발행한 책들이 수 십 권이나 꽂혀있었다. 그 가운데 가격이 저렴한 종이표지로 된 것을 한 권 뽑았다. 그러나 자그마치 900쪽이나 되는 소설 어디에서 그 버섯에 관한 언급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한국어로 된 것도 아니고 영어로 된 소설을 이제부터라도 다 읽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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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버섯. Boletus edulis. 영어속명 King Bolete. 황갈색 갓에 백색에서 황색의 그물부분과 흰색에서 갈색의 대를 가지고 있고 대 밑으로 갈수록 둥글게 굵어진다. 그물버섯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본래 미 동부지역에서는 보기 힘들다고 하는데, 이 사람은 동북 펜실베이니아에 살 때 1999년 10월 5일 침엽수[Eastern Hemlock] 밑에서 수 십 송이를 발견하여 시식해 보았다. 특별히 이 해에는 여기 저기 여러 공원에서 돋아난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침 이 어려운 일을 해 낸 분의 글이 있기에 여기에 잠시 소개함으로써 안나 카레니나 전체를 다 읽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한다.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인 코즈니셰브(Koznyshev)는 방금 바렌카(Varenka)에게 청혼할 기회를 놓친 다음, 사랑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돌연 버섯에 관한 이야기로 말꼬리를 돌리는 대목이다.
“하얀 버섯과 자작나무버섯 사이의 차이점은 뭐죠?”
“갓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지만 줄기가 달라요” 하고 대답하면서 바렌카의 입술이 흥분으로 떨렸다. 그런 말들이 오고 간 순간 두 사람은 말해야만 할 것을 말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이 다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평정을 되찾은 코즈니예브는 말했다.
“자작나무버섯의 줄기는 이틀이나 수염을 깎지 않은 가무잡잡한 남자 턱의 다박나룻을 생각나게 해 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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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껄껄이그물버섯. Leccinum scabrum. 영어속명 Birch Bolete. 갓은 회색에서 회갈색 또는 암갈색이며 습하면 끈적인다. 살색은백색이며 공기 접촉하면 분홍색으로 된다. 대는 회색 바탕에 회갈색에서 흑색의 작은 껄껄이 인편이 있다. 마치 2, 3일 깍지 않은 수염모습이다. 자작나무 밑에 주로 돋는다.)
두 사람의 말은 옳다. 톨스토이는 버섯에 관하여 잘 알고 있다. 여기서 “하얀 버섯”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그물버섯 가운데 가장 맛이 좋다는 그물버섯(Boletus edulis)을 말한다. 미국에서는 영어 속명으로 "King Bolete" 라고 부르고, 이탈리아에서는 ”뽀르찌니(Porcini)라고 부르며, 독일에서는 “Steinpilze”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작나무버섯”이라고 한 것은 “거친껄껄이그물버섯”(Leccinum scabrum)을 가리키는 것이다. 영어 속명으로 "Birch Bolete"이라고 부른다. 그물버섯의 줄기는 희거나 엷은 갈색이지만, 껄껄이그물버섯의 줄기는 우리 한국 이름 그대로 까무잡잡한 그물형태의 줄무늬나 무수한 검은 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영락없이 한 이틀 깎지 않은 수염 모습 그대로다. 물론 이 거친껄껄이그물버섯도 식용버섯이다. 자작나무 밑이나 그 근처에, 또는 자작나무를 심었던 땅위에 잘 돋기 때문에 “자작나무버섯”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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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색껄껄이그물버섯. Leccinum aurantiacum 갓의 색깔이 주황색 즉 오렌지색이기 때문에 영어속명이 Orange Birch Bolete이다. 역시 대에 껄껄이 무늬를 볼 수 있다. 식용버섯이다)
그리고 거의 평생 심리학을 공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사람이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가 버섯채취가였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프로이드는 자기 자식들과 손 자녀들과 함께 야생버섯을 채취하러 자주 숲을 찾았다고 한다. 여기 프로이드의 아들 마르틴(Martin)이 아버지 프로이드에 관하여 쓴 책(Sigmund Freud: Man and Father, New York, 1958)에 보면 대충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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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굽은등색그물버섯[필자 임시이름). Boletus longicurvipes. 영어속명 없음. 갓은 노란색이나 갈색이 섞인 오렌지색인데 표면은 점성이 있고 빛나며 약간 홈이 파져있다. 살은 흰색에서 엷은 황색을 띄우고 맛과 냄새 특별한 것이 없다. 상처내면 갈색으로 변한다. 대는 길고 흔히 구부러져 있는 것이 특징이고 밑으로 갈수록 약간 굵어진다. 대 위쪽은 흰색인데 밑으로 갈수록 약간 핑크색 나는 갈색에서 적갈색의 껄껄이 같은 점이 있기 때문에 등색껄껄이버섯과 혼동하기 쉽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섞인 혼합림 땅위에 돋는다. 학명 longicurvipes란 길고 굴곡이 있다는 뜻. 식용버섯이다.)
우리는 두려움이 없었다. 아버지는 버섯에 대하여 상당히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 내 기억에 아버지에게 검사받기 위하여 독버섯을 채취하여 가져 간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버섯에 대한 우리들의 공격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버섯이 많이 돋는 곳을 찾기 위하여 일찍 탐색전을 마친 뒤였다. 내 생각에 아버지께서 사용한 버섯 찾기의 한 방법은 빨간 버섯 갓 위에 흰 점들이 있는 화려한 색깔의 독버섯(Amanita muscaria라는 광대버섯을 말함)을 먼저 찾는 것이다. 우리가 즐겨 찾는 “Steinpilze”(그물버섯)은 눈에 잘 뜨이지 않는데 비하여 그 독버섯은 눈에 금방 잘 뜨이고, 또 우리가 찾는 그물버섯과 언제나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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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비단그물버섯. Suillus pictus. 영어속명 Painted Bolete. 갓 표면과 대 아래 부분에 황갈색에서 적갈색을 띄운 섬유상의 인편이 많고 흰색 턱받이가 있기 때문에 동정 식별하기 아주 쉽다. 식용버섯이다.)
일단 버섯이 많은 곳을 찾아낸 다음 아버지는 군인들을 지휘할 준비가 된 것이다. 어린 군인들은 각자의 위치에 서서 마치 잘 훈련된 보병들이 숲속을 헤쳐 가며 공격하는 것처럼 적당한 간격을 두고 전초전(前哨戰)을 벌인다. 우리는 요리조리 잘 빠져 도망가는 동물을 쫓는 것처럼 사냥을 벌이는 것이다. 누가 가장 으뜸가는 사냥꾼인지 언제나 경쟁을 벌렸는데, 아버지가 언제나 우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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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혈색 또는 진홍색그물버섯[필자 임시이름]. Boletus Frostii. 영어속명 Frost's Bolete. 이 그물버섯은 동정하기 아주 쉬운 버섯으로 갓이 선홍색이며 매끄럽고 윤기가 나고 그물부분도 암적색인데 건드리기가 무섭게 암청색으로 변한다. 냄새는 별로 특이한 것이 없지만 그 맛이 시다. 그리고 대에 거친 홈이 파인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새빨간 그물버섯이 식용이라고 하는데 그물부분이 빨간 것 가운데 독 그물버섯이 있기 때문에 시식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그물버섯의 이름은 야생버섯 연구가 취미였던 버몬트의 구두 만드는 제화업자 Charles C. Frost를 기념하여 붙인 것이다. 이 분은 여러 그물버섯에 대하여 처음으로 연구 설명한 분이다.)
아버지께서는 보통 우단모양의 보드라운 털이 있는 회색빛이 도는 초록색 모자를 쓰셨는데, 그 모자에는 진한 초록색을 가진 넓은 명주 리본이 달려 있었다. 진짜 좋은 버섯을 발견하시면 졸병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짧은 반코트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호각을 불기 전에 먼저 달려가서 자기 모자를 벗어서 그 버섯 위에 던지신다. 그러면 우리는 모두 호각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가고, 모두 집결을 마치고 나서야 아버지는 모자를 치우고 우리가 그 버섯을 관찰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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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비단그물버섯. Suillus granulatus. 영어속명 Dotted-Stem Slippery Jack. 습하면 강하게 끈적거리는 황갈색에서 황토갈색 갓을 가지고 있고 그물부분은 노란색이며 대는 노란색 바탕에 갈색 반점이 많이 퍼져있어서 영어속명 가운데 Dotted-Stem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소나무 밑에서 주로 돋는 식용버섯이나 껍질을 벗기고 식용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우리가 버섯을 채취하러 갈 때면 아버지는 언제나 조용히 숲속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 떠들어서는 안 되고 버섯들이 보지 못하게 버섯자루를 접어서 겨드랑이 밑에 숨겨야 한다고 하셨다. 버섯을 발견하면 아버지는 재빨리 나비라도 잡는 것처럼 모자를 벗어서 버섯 위에 덮으시곤 하였다. 아버지의 손자녀들이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말씀을 모두 곧이들었으나, 다 자란 놈들은 그러한 할아버지의 고지식함에 대하여 웃을 뿐이다. 손녀에게 숲 근처에 있는 성모 사당(祠堂)에 신선한 꽃을 바치면 버섯 찾는 것을 도와줄 것이라고 말씀하시군 하였다. 버섯을 발견하는 아이들에게는 동전을 주셨고, 가장 좋은 것을 발견하면 은전을 주셨다. 버섯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아니고 버섯의 품질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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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그물버섯. Strobilomyces floccopus. 영어속명은 재미있게도 Old Man of the Woods
또는 솔방울 같이 생겼다 하여 Pine Cone Bolete라고 한다. 갓 표면에 회색에서 흑색을 띄운 인편이 많고 그물부분은 회색을 거쳐 차차 흑색으로 된다. 식용버섯이지만 맛도 별로 없고 포자색이 검어서 음식을 검게 만들기 때문에 식용하기에는 좀 그렇다. 하지만 재미있는 버섯이라 숲에서 만나면 언제나 반갑다.)
정신분석의 대가요 꿈의 해석자로 유명한 분이 자녀들과 함께 이토록 재미있게 버섯을 채취하는 모습은 정말 부러운 장면이라 아니할 수 없다. 버섯 사냥은 가족들 사이의 유대관계를 공고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정신건강에 좋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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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나무포플러껄껄이그물버섯[필자 임시이름]. Leccinum insigne. 영어속명은 이 버섯이 주로 사시나무포플러[Aspen] 밑에서 돋기 때문에 Aspen Bolete 또는 Aspen Scaber Stalk이라고 한다. 갓은 적갈색 또는 오렌지 갈색이며 대에 갈색에서 흑색의 껄껄이 점들이 무수하다. 살은 상처내면 자갈색에서 자흑색으로 변하고 그물부분은 건드리면 잘 변하지 않거나 서서히 갈변한다. 등색껄껄이그물버섯과 아주 흡사다. 그러나 등색껄껄이그물버섯은 상처를 내면 흑색으로 변하기 전에 먼저 붉은색 또는 포도주 같은 분홍색을 띄우는 것이 특징이다. 맛좋은 식용버섯이지만 개인에 따라 위장장애가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기사입력시간 : 2008-09-19 10: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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